월간 디사이플 현장 이야기 평택대광교회
월간 디사이플 (2006년 5월호) 현장 이야기 - 평택 대광교회 편

교회를 향한 고민과 사랑,
영향력 있는 군사를 만들게 하다

“그렇다. 교회는 정확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우리 인간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사명에 실패하고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것이 하나님의 모험이다. 완벽을 기대하고 교회에 들어가는 자는 이 모험의 본질도, 인간 조건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한다. 연애의 낭만적 감정이란 어떤 깨달음으로 귀착하는가?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사랑을 만들어가는 노력이라는 인식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란 비로소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한 때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를 떠났던 아픈 경험이 있는 필립 얀시는 그의 저서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교회가 진정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가 가졌던 이러한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고민임에 틀림없다.
평택 대광교회 배창돈 목사 역시 한 때 이런 고민에 빠졌었다. 한 때 목회의 길은 결코 걷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배 목사는 어려서부터 교회의 아픔을 보면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전도사 시절, 조직과 행사 중심의, 기성교회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그 결과 세상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인해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고민과 사랑으로 1983년 개척한 평택 대광교회는 현재 주일 낮 예배 출석인원이 1천명이 넘는, 지역 내에서도 그 규모가 손가락에 꼽힐 만한 교회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가 평택 대광교회를 주목하는 이
유는 규모가 아니라, 배 목사의 바람처럼 평택 대광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강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건강한 교회의 원동력인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기 위한 배 목사의 꿈과 눈물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꿈만큼이나 깊은 좌절

평택 대광교회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보통 창립예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유명한 목회자들을 모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택 대광교회는 1월 1일 0시에 창립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 시간은 모든 교회에서 신년예배를 드리므로, 사람들을 초청하기 힘든 시간이었고, 초청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숫자보다는 첫 시간을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배목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가족에게까지 개척소식을 알리지 않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교회가 처한 외적인 여건이나 환경보다는, 어떠한 교회를 세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자 노력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한 것으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창립예배를 통해 이를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1983년 1월 1일 0시 8평 남짓 되는 공간에 강대상 하나만 놓고, 배 목사의 가정을 포함한 2가정 5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창립예배를 드린 후부터, 배 목사는 몇 안 되는 교인들과 함께 거의 매일 거리로 나가 아무나 붙잡고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개척교회니까 할 수 있는 사역이 전도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당시 가졌던 전도에 대한 열심은 남달랐다. 지금도 당시를 회상해 보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서 그런 용기와 열정이 났는지 알 수 없다”고 배 목사는 말한다.
그 결과, 한 달 만에 단 한 명도 없었던 주일학교 학생들이 50명 넘게 모였고, 가정도 한 두 가정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립한 지 11개월 만에 새롭게 예배당 부지를 구입하게 된다. 교회 청년의 소개로 50평의 예배당 부지를 구입하고 예배당을 건축하고자 했지만, 계약금조차 없었다. 배 목사는 자신이 먼저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에, 살고 있던 전세금을 헌금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전세금을 헌금하고 나니 딱히 이사 갈 마땅한 집이 없었다.
하루는 한 청년이 와서 빈 집을 소개해 줬는데, 대문도 없는 오두막집에, 집 앞에 오물까지 흘러 악취가 코를 찌르는 곳이었다. 게다가 벽이 갈라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람이 거처하기에 어려운 공간이었다. 배 목사의 집을 보고 간 여자 청년들은 몰래 눈시울을 적시며, 자신들이 바르던 화장품까지 사치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 후 대광교회는 꾸준히 성장하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꿈만큼이나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된다. 당시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니까, 강대상이며 의자며 배 목사가 직접 손으로 다 만들던 때였다. 제직회 때 어느 집사님이 “목사님, 앞으로 강대상을 바꾸려면 제직회의 허락을 받고 만드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본래 손재주가 없는 그였지만, 그 의미가 단순히 강대상의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잊은 채, 조직과 행사 중심의 비본질적인 문제로만 시름하는 기성교회를 보면서, “나는 저런 교회를 만들지 말아야지”라고 늘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자신이 개척한 교회가 자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죽어있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배 목사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물론 여전히 교회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고,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꿈꿨던 교회가 아님은 분명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자신이 꿈꾸던 교회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고민하던 배 목사에게 1987년에 참석한 CAL세미나는 한 줄기 빛을 던져주었다. 무엇보다도 다락방 참관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교회의 모습을 본 것이다. 말씀을 가지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서로를 세워가는 모습 속에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회의 모습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중심에 훈련된 평신도가 있음을 보며, 그가 꿈꾸었던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느꼈다. 물론 개척 후 자신도 나름대로 성경공부를 꾸준히 시켜 왔지만, 그냥 성경의 지식만을 가르쳤지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지는 못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1.대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헌신
CAL세미나를 마친 대부분의 목회자가 그렇듯이, 배 목사 역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락방 참관을 통해 도전받은 그는 우선 교회 내 소그룹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당시 구역을 순모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처음에는 다락방으로 바꾸었으나, 이름으로 인해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다시 순모임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모임의 성격까지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배 목사가 선택한 방법은 모든 순모임을 자신이 인도하는 것이었다. 물로 기존의 구역장은 순원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 했지만, 모임의 인도만큼은 본인이 직접 하기로 했다. 크게 세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첫째는 성도들에게 귀납적인 소그룹 환경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보다 빨리 맛보게 하고 싶어서였다.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들이 세워지기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먼저 체험하게 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둘째는 이를 통해 제자훈련을 위한 토양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앞으로 훈련을 받게 될 성도들이 순모임을 통해 소그룹 환경이나 귀납적인 성경공부를 경한한 후 훈련에 임하게 된다면, 훈련의 효과는 더 클 것으로 생각한다. 셋째는 훈련생들이 수료 후 실제 사역의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소그룹의 토양을 어느 정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소그룹 환경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순원들을 이끌고 새로이 귀납적으로 모임을 인도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로 당시 교인 수는 50여 명 정도로 현실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개척초기라 부교역자도 없는 시절임을 감안할 때, 기존의 교회 사역에 일주일에 7~8개의 순모임을 더 인도해야 한다는 것은 웬만한 결단과 헌신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그 크기만큼이나 열매가 컸다. 순모임을 통해 성도들에게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심겨졌고, 사람들이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자훈련이 교회 내 핵심사역으로 빠르게 자리 잡기 위한 토양을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치러야 할 대가 역시 적지 않았다. 이렇게 3~4년을 정신없이 뛰다 보니, 배 목사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 이상하리만큼 점점 지쳐갔고, 식사마저 제대로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혈소판이 보통 사람의 1/4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배 목사는 투병을 위해 훈련을 1년 정도 쉴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이미 훈련을 통해 순장들이 상당수 세워진 상태였으므로, 당장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막 훈련목회가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쉬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배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CAL세미나를 참석했을 때만 해도, 옥한흠 목사님께서 병으로 쓰러지시기 전이라, 요즘처럼 건강에 유의하여 제자반의 수를 조절하라는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오로지 ‘미쳐야한다, 목회자가 신념과 열정,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뛰어든다면 할 수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 때 제가 했던 방식 그대로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그 열매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2.변화에 대한 확신
기존 구역 모임을 순모임으로 바꾼 배 목사는 1기 제자훈련생을 모집하게 도니다. 하지만 배 목사 역시 훈련을 시작하는 교회에서 자주 겪게 되는 문제인 훈련에 대한 반감을 극복해야만 했다. 제자훈련을 앞으로 하겠다고 배 목사가 선언하자, ‘대학시절 선교회를 통해 자신은 이미 훈련을 다 받았다’고 말하는 집사가 있는가 하면,‘목사님, 제자훈련은 서울에 있는 강남에서나 되는 것이지, 여기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집사까지 반대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직분자들의 반대가 컸고, 실제로 방해까지 했다. 어렵게 훈련생을 모집하여 훈련을 하는데, 직분자들이 한 사람씩 훈련시간에 맞춰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훈련생들은 중간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초대에 응하느라 훈련에 못 오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었다. 호응은커녕 제발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간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제자훈련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CAL세미나를 들은 후 1년쯤 지났을 때, 함께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 중 3백여 명 정도의 교인이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는 어느 목사님을 우연치 않게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 역시 훈련생을 모집했는데, 2명밖에 신청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광고를 했지만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결국 시작도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형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명도 지원을 안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이 목회의 본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붙여주신다면 그 사람을 붙들고 훈련하겠다는 각오가 있었습니다.”
배 목사는 우선 사모에게 훈련을 받도록 권했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한 자매를 구걸하다시피 해서 훈련에 임하도록 했다. 사실 신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을 훈련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훈련을 통해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배 목사는 생각했다. 그 외에도 2명을 더 모집했는데, 이 2명은 과거에 가졌던 직업이 다소 오해를 살 수 있는 사람들로, 훈련을 통한 성장이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1기 훈련생들 면모 하나 하나를 보면, 제자훈련을 통해 큰 열매를 맺기가 참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배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무엇보다도 한 영혼 한 영혼이 너무나 귀했다. 어찌 되었건 아무도 받지 않겠다는 훈련을 받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고 예수님 역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냐고 하던 갈릴리의 어부들부터 시작하지 않았던가, 배 목사 역시 걱정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대광교회처럼 제자훈련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은 경우, 훈련을 통해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훈련을 방관하거나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줘 훈련을 지속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기 제자반이 성공하다면, 그 영향은 전교인에게, 그리고 뒤따라 훈련을 받게 되는 훈련생 모두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물로 누구에게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실제로 훈련을 핟 보면 어느 해에는 열매가 정말 적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을 하곤 합니다. 훈련생이 다 변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라도 변하면 된다. 그리고 제자훈련에 모든 힘을 쏟으신 주님의 뜻에 순종한 것으로 만족하겠다. 이런 생각이 오늘날 훈련의 열매를 얻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평택 대광교회가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모판은 바로 1기 제자반의 열매 때문이었다. 훈련을 통해 나타난 삶의 변화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열매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부러움이 되었다. 그 결과 2기부터는 제자훈련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교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제자훈련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조차 훈련에 자원하게 됐다.

3.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용기
그런데 이러한 변화라는 열매가 맺어지기까지 배 목사는 여러 유혹을 이겨내야만 했다. 우선 가장 먼저 직면한 유혹은 ‘조급함’이었다. 이는 제자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만나게 되는 유혹이다. 어쩌면 훈련에 대한 열정이 크면 클수록 조급함이라는 유혹은 커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배 목사 역시 1기 제자반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변화를 빨리 가져오고픈 유혹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처음 제자훈련을 시작할 때 주변의 눈초리는 곱지 않았기 때문에 더 조급해지기 쉬었다.
이럴 경우 배 목사는 자신의 힘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변화는 말씀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하심으로 일어나는 것이지, 결코 인도자의 힘으로 이룰 수는 없다. 인도자가 자신의 힘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조급해 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원하던 열매도 얻지 못하고 목회자 자신도 지치게 된다.
두 번째 유혹은 ‘타협’이었다. 사실 제자훈련을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수이 기성교인들은 환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당하게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믿을 필요가 있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혹은 인도자 자신에게도 늘 존재한다. 특히 훈련초기에는 한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행여나 훈련을 그만두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으로 이런 유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배 목사는 훈련은 훈련답게 철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에 보냄 받은 제자로서 세상을 이기려면 강한 군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평신도 지도자로서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철저히 훈련시켜야 한다. 비록 처음에는 훈련생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지만, 삶의 변화를 맛보게 된다면, 오히려 이 모든 것을 감사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첫 해 훈련생 중에는 결혼하고도 몇 해 동안 자녀가 없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오후에 시부모님께서 한약을 지어주신다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제자훈련 기간 중에는 모든 공예배에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 자매에게 예배가 끝난 후에 가라고 했고, 결국 예배 후에 시부모님을 찾아 뵌 그 자매는 약은커녕 꾸중만 듣고 왔다고 합니다. 자매는 속으로 목사가 너무 야속해서 눈물까지 흘리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사실 강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제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그 자매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목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려고 노력하니까 이렇게 은혜를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누가 세워 가는가?
1기 제자반이 열매를 맺게 되자, 훈련에 대한 성도들의 시각이 새삼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훈련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직분자들도 있었고, 이들 중에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훈련을 통해 교회 곳곳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고, 배 목사가 꿈꾸던 강한 교회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건강해지자 자연스럽게 꾸준히 성장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지역 내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의 교회가 되었다.

1.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전에 대광교회가 위치했던 곳은 지리적으로 사람이 모일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개발되었지만, 당시에는 과수원 정 중앙에 교회가 위치하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가 있으리라고 상상하기조차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온 사람들은 ‘이런 곳에도 교회가 있네’라며 신기해 할 정도였다.
사실 평택 시내에서 개척을 했다가 그곳으로 교회를 옮기게 된 배경에는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 목사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확신이 있었다. 교회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곳에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목회를 할 것이다. 이러한 배 목사의 확신처럼, 그렇게 열악한 환경의 교회에 매 주일이면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350명 정도가 들어가는 본당이 좁을 지경이었다.
배 목사가 초창기 제자훈련을 실시할 때 주변에 있는 한 목회자가 자신에게 조심스레 충고를 해왔다고 한다. 요지는 배 목사사가 열심히 하는 것은 알겠는데, 너무 비생산적으로 일한다는 것이었다. 고작 몇 사람을 모아놓고 매번 3~4시간씩 1년씩이나 투자해서 언제 교회를 성장시키겠냐고, 교회의 우치도 너무 안 좋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교회란 교회에 출석만 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배 목사의 믿음은 옳았고, 대광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을 먼저 세웠던 주변의 다른 교회들보다 더 크고 건강하게 성장했다.
이렇게 교회가 성장하자, 기존의 공간으로는 더 이상 늘어나는 성도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 새로이 교회를 건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배 목사는 건축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모아 놓은 건축헌금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IMF까지 터져 경기전체가 침체되어, 가뜩이나 부유하지 않은 교인들의 형편을 감안할 때 건축하기에 적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억 규모의 건축을 공기에 맞춰 무사히 마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반 성도들에게는 건축헌금을 하도록 거의 요청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건축이 순장들을 비롯한 훈련 수료생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교회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다고 믿습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강한 교회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건축을 시작하기로 결정할 때, 그리고 진행되는 중요한 순간마다 저는 순장을 비롯한 훈련 수료생들과 함께 기도했고, 함께 헌신했습니다. 이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저는 그들의 헌금보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귀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그 해답은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2.정신을 지키는 사람들
건축을 마치자 교회의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빠른 성장이 오히려 배 목사에게는 고민으로 다가왔다. 자칫하면 그 동안 유지해온 교회의 정신과 문화가 빠른 성장과 더불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건축 이후에는 새가족 중에서 기존 신자의 비율이 아무래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에, 더욱 고민이 컸다.
사실 기존의 전통적인 교회를 보면서 배 목사가 안타까웠던 점 중 하나는 복음의 열정과 영혼에 대한 사랑이 사라졌음에도, 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것인데, 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회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 개척 시 전도와 선교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세웠고,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새가족 중 새신자의 비율이 70~75% 가량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그런데 교회를 건축하자 전도를 하지 않아도 새가족이 주일마다 넘치는 것이었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첫째 전도에 대한 열정을 떨어뜨린다는 점과 둘째, 교회의 정신이나 문화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요소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배 목사는 새가족반을 마치기 전에는 결코 교인으로 등록을 받지 않았다. 사실 교회 등록에 여러 조건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교회 성장에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 특히 기존 신자들은 새로운 교회에 가면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향인데, 5주간의 과정을 거쳐야만 겨우 등록이 된다는 사실은 결코 그들을 반기는 분위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배 목사에게는 교회 성장보다는 교회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는 개척교회를 하면서 정신과 문화가 유지되지 않는 성장의 한계를 배 목사 자신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교회의 진정한 영향력은 결국 그 크기가 아니라 질에 달려 있음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광교회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 중 하나남 섬김의 문화이다. 1천 명이 넘게 출석하는 교회에 교역자 외에는 유급직원이 없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교회 사무실과 커피숍, 건물관리, 미화관리 등 모든 행정적인 업무는 물론, 교회 내 모든 사역을 평신도들이 담당한다. 심지어 집사 직분을 받고자 하면, 반드시 교회 내에서 섬기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 만약 서리 집사로 임명되었다가도 섬기지 않아 다음해 서리집사에서 제외되어도 결코 낙담하고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이 없다고 한다.
“저희 교회에서 타 지역으로 이사 간 집사님 한 분이 다른 교회를 출석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이 간 교회는 주일 점심에 국수를 제공하는데, 이상하게도 식사를 준비하는 성도들이나 먹는 성도들이 불평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섬기지 않으니까 불평이 많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정신은 사라지고 사역만이 남는다면, 교회는 결코 교회다워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 목사는 교회는 교회를 움직이는 정신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다고 말한다. 정신이 사라지고 사역만이 남은 교회는 결국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배 목사는 당연히 제자훈련을 꼽는다. 훈련을 위해 씨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움직이는 정신이 무엇인기 깨닫고 느끼며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3.꿈을 나눈 사람들
최근 대광교회는 충복 진천에 11만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기독교학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배 목사는 다음 세대를 제자훈련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이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교회 건축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대구모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광교회 성도들은 기쁘게 이 일에 동참하며, 즐거이 섬기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배 목사가 성도들과 함께 꿈을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대광교회에 출석한 한명숙 집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과수원에 교회가 있을 때 처음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곳에 그리 화려하지도 않는 건물을 짓고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젊은 목사님이 나중에 학교를 지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조금은 허황된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등록을 하고 훈련을 받다 보니, 어느새 기독교 학교 설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목사님이 가졌던 꿈이 제 꿈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진천에 있는 땅을 구입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대광교회의 비전은 단순히 대광교회 성도들에게만 영향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할 때의 일이다. 배 목사는 그나마 있던 재정도 땅을 구입하고 나니 남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건축이니까 미룰 수 없어 이랜드 건설에 설계를 맡겼다.
그런데 설계도가 완성되고 계약일이 다가오는데 계약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통상 계약금은 전체 공사비10%가량을 내야 하는데, 계약 당일까지 5% 정도밖에 모으질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랜드 건설이 선뜻 계약에 응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랜드 건설은 배 목사와 대광교회가 가진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사람을 세우고자 하는 철학을 보고, 이 교회는 망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비전을 담보 삼아 계약을 체결했단다.
이처럼 교회든 개인이든 꿈과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 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것의 없을 것이고, 꿈이 없는 사람이나 교회도 역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꿈의 존재여부가 아니라, 꿈의 내용과, 그 꿈을 얼마나 누리고 있느냐라는 꿈의 공유이다. 배 목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비전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늘 자문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의 꿈이 주님의 비전과 같다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 일을 이루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의 비전을 성도들과 나누는 것도 중요한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나눈다면, 반드시 성도들 역시 목회자와 동일한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제자훈련이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 가지신 꿈이라는 사실입니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한 번은 대단히 어려운 바이올린 연주곡을 썼다. 그런데 곡을 받은 연주자는 몇 주간 연습한 끝에 스트라빈스키에게 와서, 연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주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곡이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연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자 스트라빈스키가 말했다.
“이해합니다. 내가 의도하는 바는 어떻게든 연주해 보려고 애쓸 때 나오는 그 소리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 가진 바람도 이와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모습은 하나님이 원래 악보에 그렸던 음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게든 그 음을 연주해 보려는 우리의 노력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세워갈 것이다. 평택 대광교회 역시 하나님이 바랐던 완벽한 교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평택 대광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루어가길 원하시는 교회의 단상을 보게 된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세워가고자 노력하는, 그래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를 이루어가는 대광교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양승언 목사>